1.

성경을 읽을 때는 우선적으로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파악해야 합니다.

기록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텍스트의 단편적인 내용만을

현시대의 시선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성령이 저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발견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해석하기 전에 먼저 그 시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 어떤 모습을 본받지 말자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2.

바울이 살았던 시대는 로마의 식민지 시대입니다.

또한 로마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였던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로마교회 안에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에 대한 자료를 살펴봐야 합니다.

 

3.

9장부터 내용의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유대인들을 걱정합니다. 특별히 예수를 아직 믿지 못하는 형제들을 걱정합니다. 10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의 신분보다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 1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남은 유대인들의 넘어짐은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12장 이전의 내용은 로마교회 안에 함께 속해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간의 긴장감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합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쓰였습니다.

 

 

4.

이어서 본문 12장입니다. 내용은 11장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전체적 핵심 내용은 기존의 유대인들과 접붙임 된 이방인들이 연합되어 하나님을 다양한 은사로 섬겨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12장의 1절과 2절만 떼어서 읽을 것이 아니라, 이 두 개의 절 역시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흐름을 보면, 1절과 2절의 내용은 바울의 두 가지 의도가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5-1.

첫 번째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던 예배에 대한 견해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가지고 있었던 희생 제사 중심의 예배와 이방인들이 갖고 있었던 신전 제사 중심의 예배에 대한 인식을 

일상 속에서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의 예배로 바꿉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예배입니다.

(수가성 여인과 대화를 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자세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1세기 초대교회의 예배는 예전과 예식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 예배는 다시 예전과 예식의 형태로  변화됩니다.  

그 후 종교개혁을 통해서 또다시 일상의 예배로 회복합니다. 

(루터가 말했던 만인 제사장과 모든 직업이 소명임은 일상의 예배를 회복하고자 했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5-2.

두 번째는 로마의 사회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을 살펴보면 바울은 사회적 불의를 나열합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동, 수군수군함,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하는 것, 부모를 거역하는 것, 우매, 배악, 무정, 무자비입니다. 시대적인 상황을 보았을 때, 바울은 로마의 정치적인 문제와 잘못된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기록된 역사를 통해 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차별과 악함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모습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관점과 충돌이 되었습니다. 오류투성인 법과  강자와 약자가 공생하지 못하는 사회구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어진 13장부터 15장의 내용을 통해서 강자와 약자 사이의 상호 용납과 사회적 책임을 권고합니다.

 

6.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으라는 메시지는 예배에 대해 바른 이해와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 소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의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 없으니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성도의 삶(일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회의 불의와 구조적 오류를 구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공의와 정의를 세워나가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되어 왔던 일입니다. 그때마다 예수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의 예배를 회복하고 정의의 소리를 외쳤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의 모습, 악한 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선지자들, 로마의 식민지 앞에 믿음을 지켰던 초대 교회 사람들, 부패한 종교 앞에 개혁을 일으켰던 종교 개혁자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7.

오늘날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잃어버린 예배와 하나님 나라의 기준을 다시 찾아야 함을 선포합니다.

불의한 것에 소리 낼 줄 아는 용기와 아름다운 것으로 일상을 채우는 삶이 성도의 진짜 예배가 됨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2020.9.11 (잠깐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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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성도,

예배하는 삶,

.

그리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

.

.

.

Ps. 문득, 나도 이런 광고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김

 

youtu.be/o26k0TteJ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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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is Coming,

Minimalism,

그리고 고민하는 성도

1.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한 염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Winter is coming! 장벽 근처 사람들의 외침 같이 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전에도 세계적으로 대유행할 수 있는 전염병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가볍게 여기며 넘겼다. 감염병은 결국 실제가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세상을 많이 아프게 하고 있다.

장벽 근처 사람들은 또 다른 겨울도 예고하고 있었다.

Winter is Coming!

환경과 기후 문제가 오고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

2.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공간과 소비를 단순함과 간결함으로 채우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라이프스타일로 채택한 사람들은 그들의 삶 가운데 필수적인 것과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 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인간이 넘어선 끝없는 욕망의 선을 지적하며 철학적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소비에 가치를 두고, 욕망에 지배되고 있는 모습들을 향해서 경고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자연과 함께 공존해야만 하는 인간으로서 과연 지금 바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학을 향하고 있다.

“과연 신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스림’의 권한으로 무례한 욕심을 발현해도 괜찮은 것인가?”

성경은 사람만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이 함께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환경은 인간이 마음대로 짓밟고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꾸며 공존해야 하는 선물인 것이다.

.

.

3.

그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것만 놓고 비우기를 권장하는 초 미니멀리즘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조 의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가온 경고들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쉽게 생각했던 편리함이 또 다른 겨울을 앞당기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잘못된 태도임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가 된 성도들에게 자연환경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불필요한 소비문화와 환경을 망가뜨리는 삶의 방식들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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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사람은 아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말합니다.

이불킥으로부터 나를 건지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지경을 넓히시며 은혜로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아는 지식'을 사랑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명철을 구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경외함"이라 일컫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 본질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언제나 사랑의 기준으로 나타납니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시대에는 사랑의 기준을 내팽개치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기준으로 말하는 모습들이 허다합니다.

기본적인 정확성과 치우치지 않은 균형을 바로 세우지 못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정죄하고, 쉽게 단정 짓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실망스럽게 다가옵니다.

 

권위를 갖은 사람은 더욱더 부지런히 명철을 구하며 지식을 쌓고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혹여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쟁점들에 대해서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사랑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안위 유지와 기득권을 위해 사랑해야 할 대상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꾸는 모습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과 거리가 너무 먼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8.17 (잠깐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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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Church (Christopher Smith , Jonh Pattison)
슬로우 처치 (크리스토퍼 스미스, 존 패터슨)

0.
갑작스럽게,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었다.
사실, 책을 정리하는데 표지에 누군가가(아마도 시엘ㅋ)
색연필로 책 표지에 낙서한 흔적을 발견하고 안 지워질 걸 알지만 그래도 지우개로 지워 보려고 하다가 ㅋㅋ 뭐 아무튼 ㅎ
시엘 : “아빠 제가 아마 어렸을 때 그랬을 거예요”
아빠 : “ㅋㅋ 지금은 안 어린 거야?”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말씀이 생각이나 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과 생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
.
얼마 전, 중고등부 아이들과 공과 시간에 요한복음을 공부하며 스토아학파와 영지주의에 대해서 나눔을 한 적이 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이 두 가지 사상과 함께 있던 시대 속에 저자도 분명 인지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바라보면 복음서의 기록들이 조금 더 가깝게 이해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조너선 월스하트그로브도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방향감각이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의 본질을 괴롭히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
.
.
슬로우 처치는 본질보다 앞서나간 기계론적 교회공동체와 성도의 성장을 경고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방법 (정형화된 사역, 표적 마케팅, 각본화된 예배, 브랜드화된 교회와 사람, 공식이 된 성장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한다. 결국, 수많은 프로그램의 홍수와 진정성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에 지친 모습 속에서 시작된 운동이 바로 슬로우 처치 운동이다. 이들은 본질을 바르게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의도로 생각을 공유한다.

2.
‘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주목해야 한다.’ (P29)
.
.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통찰 중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예수 안에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함께하는 "관계” 중심적이며, “삶에서의 부름”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부분이다. 토마스 머튼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인류 역사의 격변은 절망감, 냉소주의, 폭력, 자기모순, 두려움과 희망, 의심과 믿음, 창조와 파괴의 이중성을 대변하며, 현대인은 잠깐이나마 그 고통을 무디게 해주는 형상, 우상, 슬로건, 프로그램 등에 집착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슬로우 처치가 지향하는 방향성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조용하게 때를 기다리는 삶이다.
.
.
토마스 머튼이 바라보는 현시대의 자화상에는 공감할 부분이 많다. 특히나 코비드 19를 통해서 수면위로 올라오는 모습들은 그의 의견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다.

3.
먼저 저자는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에 초점을 맞추며 나간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성경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사역 시간은 아무래도 제한된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와 인지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숙하게 되는 과정에는 상당히 느리고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질문한다.
.
.
저자는 현시대의 교회 모습을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에 적응해나가는 과정 중 하나로 보려고 하지만 사실은 성경 속에 나타났던 이스라엘 백성의 “돌이킴”이 필요한 시대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참조 :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로핑크] [하나님은 교회가 필요하셨을까?/로핑크]
.
.
이전에 페북에 포스팅했던 글 중에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로버트 뱅크스]가 있다. 교회 공동체의 본질은 무엇이며, 공동체의 역활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발견한 보석 같은 책이다. 물론, 무조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어그러진 역사의 행보 속에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때에 지속해서 이전 세대를 묵상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현시대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기준을 찾으며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4.
변화가 필요하다.
.
저자는 윤리, 생태, 경제의 3가지 관점으로 방향성을 제시한다. 관계보다 앞선 사역과 프로그램들 그리고 교회 공동체만을 위한 교회 공동체의 문제점을 발견한다.
.
.
개인적으로 요즘 느끼는 마음 중 하나가 교회 사역의 허무함(?)이다.
코비드 19로 인해 불가피하게 다양한 팀 사역이 중단되면서 역시나 팀 내의 소통도 중단된 것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팀 사역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관계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 팀과 사역이 사라지면 모든 관계도 사라질까? 생각해보면 팀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관계적인 면의 약점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대의 교회 대부분이 그렇게 될 것만 같다. 교회 공동체 안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관심과 호기심, 다양한 생각의 공유, 삶의 현장에서의 관계가 없는 한 분명히 그럴 것 같다.

5.
교회 공동체 안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
복붙 복붙(control+v)이 된 마냥 대부분의 교회가 밀고 있는 공적 예배 시스템과 사역들이 반드시 건강한 공동체의 정답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교회는 "나(성도)"이며 예배는 "성도의 삶"이라고 강조하지만 이와 중첩되는 공적 예배의 의미와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를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도 씁쓸하다. 만약 이것 계속해서 모호한 상태가 된다면 다시 뒤돌아보며 기준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상호 간의 관계에 있다.
.
.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사역이 아닌 관심과 소통의 공유로 시작되어야 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어쩌면 세워진 다양한 담벼락들과 목표를 허물어야 할 것 같다.
순간의 행복과 만족, 안전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해서 더딜지라도 올바르게 성장하는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조금 특별하고 독특한, 개성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과감하게 기존의 프레임을 조금 부수고 교회 안에서, 또한 교회 밖에서 마음이 먼저 만나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
.
이 시대에 커다란 이슈 중 하나가 교회 안과 밖이 다른 모습에 대한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밖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 고립되고 퇴보한다. 지역사회가 생각하는 교회의 이상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모임이라는 프레임에서 종교가 가진 의미(진리)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는 프레임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사실 하나님의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올바르게 알고 지키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6.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강조되는 생각이 있다.
바로 "공감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며칠 전에[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 -Susan Sontag-]을 다시 읽었다.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필독서와 다름없는 책이다. 촬영자의 시선과 의도가 정말 올바른 기준과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것인가?를 질문하며 옳은 시선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하는 책이다. 어쩌면 폭력이 되고, 어쩌면 불법이 되고, 또 어쩌면 거짓말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시선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동시에 그런 위험성을 인지한 상태로 시작한다면, 상대를 공감하고 상황을 공감하고,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
.
마찬가지로 슬로우 처치의 저자도 수전 손택과 비슷한 방법으로 공감의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다. 거울을 들고 자신만 보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게 이제 거울 좀 그만 보라고 요청하는 것 같다. 내가 보는 내 모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 속에 있는, 세상이 보고 있는 나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는 것 같다.

7.
요즘 페이스북에 코비드 19 이후 변화될 세상의 모습들에 대한 글이 다양하게 보인다. 경제와 환경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습에 대한 글들도 많이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슬로우 처치”의 슬로건은 생각보다 피부에 와 닿는 부분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이러한 어두운 시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다가가는 시기가 되면 좋겠다.
.
.
하나님의 기준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소식이 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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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보다 '가정 예배' 택한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개신교는 '만인 제사장', 단독자로 예배할 수 있어야"

www.newsnjoy.or.kr

 

온 맘 다해. (생각)

온 맘 다해.

(1)
이번 주일예배 찬양 인도를 부득이하게 맡게 돼서 곡들을 정하다가 어노인팅 5집에 수록되었던 "온 맘 다해"라는 곡을 첫 번째 곡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2)
가사를 묵상하는데 수가성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이엘, 시엘이가 매일 요한복음을 배우고 있는데, 이번 한 주간은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쉽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 같습니다.

 

(3)
찬양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한 시간"
원곡 영어 가사를 직역하면[당신과 함께 있는 이 고요한 곳에서] 입니다.

정오 뙤약볕 아래에, 아무도 오지 않는 고요한 우물가.
그곳에 찾아오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인의 시간이 상상되었습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그녀는 그분으로부터 예배, 성전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원곡에서는[나의 가장 깊은 곳을 오직 당신, 한 분께만 드러냅니다][나는 숨길 것이 없고, 주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녀는 정말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을 발견합니다.

 

(4)
2절의 첫 소절은
"나 염려하잖아도 내 쓸 것 아시니, 나 오직 주의 얼굴 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 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원곡에서는[이해할 수 없을 때도 당신은 내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날마다 순종하며 주 따르오리다"
[모든 상황에서 순종하며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되어 마을로 뛰어가 예수님을 전하던 그 여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5)
후렴이 참 인상 깊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만난 후, 심쿵했던 수가성 여인의 진심이 담긴 고백인 것 같습니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길 원합니다"
"내 모든 삶이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만 섬기겠습니다
“온 맘 다해”

 

(6)
찬양을 묵상하며 저 역시 주님과 함께하는 고요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분께 마음을 쏟아봅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 나아가고, 그분을 바랍니다.
내가 가진 많은 염려보다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봅니다.

 

(7)
저도, 온 맘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온 맘 다해 하나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온맘다해] https://youtu.be/4Cyq4GFleCw

2020.2.22 (잠깐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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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배,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반응하는 곳이
진짜로 예배하는 곳입니다.
.
말하고 듣기만 하는 예배가 아닌
말하는 대로 살아가고
듣는 대로 살아가는 곳이
진짜로 예배하는 곳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합니다."라고 
고백만 잔뜩 하는 것이 아닌,
.
사랑하는 그분의 뜻을 배우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
.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서는
하나님의 바른 뜻과 진리가
온전히 수호되어야 하며
.
개인의 삶 속에서는
그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2019.6.27 (잠깐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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