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Church (Christopher Smith , Jonh Pattison)
슬로우 처치 (크리스토퍼 스미스, 존 패터슨)

0.
갑작스럽게,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었다.
사실, 책을 정리하는데 표지에 누군가가(아마도 시엘ㅋ)
색연필로 책 표지에 낙서한 흔적을 발견하고 안 지워질 걸 알지만 그래도 지우개로 지워 보려고 하다가 ㅋㅋ 뭐 아무튼 ㅎ
시엘 : “아빠 제가 아마 어렸을 때 그랬을 거예요”
아빠 : “ㅋㅋ 지금은 안 어린 거야?”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말씀이 생각이나 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과 생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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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고등부 아이들과 공과 시간에 요한복음을 공부하며 스토아학파와 영지주의에 대해서 나눔을 한 적이 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이 두 가지 사상과 함께 있던 시대 속에 저자도 분명 인지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바라보면 복음서의 기록들이 조금 더 가깝게 이해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조너선 월스하트그로브도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방향감각이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의 본질을 괴롭히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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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처치는 본질보다 앞서나간 기계론적 교회공동체와 성도의 성장을 경고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방법 (정형화된 사역, 표적 마케팅, 각본화된 예배, 브랜드화된 교회와 사람, 공식이 된 성장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한다. 결국, 수많은 프로그램의 홍수와 진정성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에 지친 모습 속에서 시작된 운동이 바로 슬로우 처치 운동이다. 이들은 본질을 바르게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의도로 생각을 공유한다.

2.
‘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주목해야 한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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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통찰 중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예수 안에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함께하는 "관계” 중심적이며, “삶에서의 부름”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부분이다. 토마스 머튼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인류 역사의 격변은 절망감, 냉소주의, 폭력, 자기모순, 두려움과 희망, 의심과 믿음, 창조와 파괴의 이중성을 대변하며, 현대인은 잠깐이나마 그 고통을 무디게 해주는 형상, 우상, 슬로건, 프로그램 등에 집착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슬로우 처치가 지향하는 방향성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조용하게 때를 기다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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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이 바라보는 현시대의 자화상에는 공감할 부분이 많다. 특히나 코비드 19를 통해서 수면위로 올라오는 모습들은 그의 의견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다.

3.
먼저 저자는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에 초점을 맞추며 나간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성경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사역 시간은 아무래도 제한된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와 인지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숙하게 되는 과정에는 상당히 느리고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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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시대의 교회 모습을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에 적응해나가는 과정 중 하나로 보려고 하지만 사실은 성경 속에 나타났던 이스라엘 백성의 “돌이킴”이 필요한 시대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참조 :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로핑크] [하나님은 교회가 필요하셨을까?/로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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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페북에 포스팅했던 글 중에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로버트 뱅크스]가 있다. 교회 공동체의 본질은 무엇이며, 공동체의 역활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발견한 보석 같은 책이다. 물론, 무조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어그러진 역사의 행보 속에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때에 지속해서 이전 세대를 묵상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현시대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기준을 찾으며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4.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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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윤리, 생태, 경제의 3가지 관점으로 방향성을 제시한다. 관계보다 앞선 사역과 프로그램들 그리고 교회 공동체만을 위한 교회 공동체의 문제점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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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즘 느끼는 마음 중 하나가 교회 사역의 허무함(?)이다.
코비드 19로 인해 불가피하게 다양한 팀 사역이 중단되면서 역시나 팀 내의 소통도 중단된 것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팀 사역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관계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 팀과 사역이 사라지면 모든 관계도 사라질까? 생각해보면 팀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관계적인 면의 약점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대의 교회 대부분이 그렇게 될 것만 같다. 교회 공동체 안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관심과 호기심, 다양한 생각의 공유, 삶의 현장에서의 관계가 없는 한 분명히 그럴 것 같다.

5.
교회 공동체 안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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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붙 복붙(control+v)이 된 마냥 대부분의 교회가 밀고 있는 공적 예배 시스템과 사역들이 반드시 건강한 공동체의 정답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교회는 "나(성도)"이며 예배는 "성도의 삶"이라고 강조하지만 이와 중첩되는 공적 예배의 의미와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를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도 씁쓸하다. 만약 이것 계속해서 모호한 상태가 된다면 다시 뒤돌아보며 기준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상호 간의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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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사역이 아닌 관심과 소통의 공유로 시작되어야 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어쩌면 세워진 다양한 담벼락들과 목표를 허물어야 할 것 같다.
순간의 행복과 만족, 안전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해서 더딜지라도 올바르게 성장하는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조금 특별하고 독특한, 개성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과감하게 기존의 프레임을 조금 부수고 교회 안에서, 또한 교회 밖에서 마음이 먼저 만나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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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커다란 이슈 중 하나가 교회 안과 밖이 다른 모습에 대한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밖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 고립되고 퇴보한다. 지역사회가 생각하는 교회의 이상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모임이라는 프레임에서 종교가 가진 의미(진리)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는 프레임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사실 하나님의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올바르게 알고 지키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6.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강조되는 생각이 있다.
바로 "공감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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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 -Susan Sontag-]을 다시 읽었다.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필독서와 다름없는 책이다. 촬영자의 시선과 의도가 정말 올바른 기준과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것인가?를 질문하며 옳은 시선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하는 책이다. 어쩌면 폭력이 되고, 어쩌면 불법이 되고, 또 어쩌면 거짓말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시선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동시에 그런 위험성을 인지한 상태로 시작한다면, 상대를 공감하고 상황을 공감하고,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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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슬로우 처치의 저자도 수전 손택과 비슷한 방법으로 공감의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다. 거울을 들고 자신만 보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게 이제 거울 좀 그만 보라고 요청하는 것 같다. 내가 보는 내 모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 속에 있는, 세상이 보고 있는 나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는 것 같다.

7.
요즘 페이스북에 코비드 19 이후 변화될 세상의 모습들에 대한 글이 다양하게 보인다. 경제와 환경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습에 대한 글들도 많이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슬로우 처치”의 슬로건은 생각보다 피부에 와 닿는 부분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이러한 어두운 시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다가가는 시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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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준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소식이 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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