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둘째 주, 잠깐(?) 묵상.
임재로 시작된 공의로운 삶 (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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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기록된 세례요한의 모습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말라기에 기록되어 있는 부분도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백성이라 불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호의의 언약을 통해 주어진 놀라운 계획을 소망하며 살았던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라기의 내용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의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이 시대는 묵시를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최악의 시대는 바벨론 포로기처럼 보입니다. 나라를 잃고, 성전도 잃어버린 채, 포로로 살아가야 했던 어두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시대에는 예루살렘의 재건, 회복이라는 한줄기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라기 시대는 그 반대의 상황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했고, 나라도 찾았고, 자유도 있었습니다. 성전이 세워지자 당연히 상황이 더 좋아질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금은 더 높아지고(1:8), 가뭄과 병충이 생기고(3:11), 무엇보다 소망하는 것. 기다리는 것,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묵시(소망)가 없던 백성은 잠언에 기록처럼 방자하게 행하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공의를 무너뜨렸고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통해 이방 신들을 용납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가 돼버린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의 제물을 마음대로 빼돌렸고,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놀라운 소식을 선포합니다. 

“너희를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의 전에 임하리니”

여기서 “그의 전”은 하나님의 성전을 말합니다. [히:헤칼/궁전, 성전] 하나님을 잃어버린 백성에게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셔서 함께 하실 것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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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에 보면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타나는데, 백성과 함께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된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역시나 더 나아질 줄 알았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마실 물이 필요했고, 먹을 음식이 필요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 처럼 혹독한 삶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불평과 불만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홀라당 잃어버리는 모습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선지자 말라기에게 묵시를 주셨던 것처럼 모세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성막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임재하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성전에 임재한 하나님의 계획은 훗날 엄청 놀라운 계획으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성전의 개념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사람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 사람에게 임재(내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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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기록된 것과 같이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대로 만들어야 했던 성소는 거룩함의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성소와 함께 살아가야 할 백성들 역시 거룩한 기준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이어서 말라기 선지자는 임재하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백성들을 기록합니다.

먼저 임재하실 하나님을 "금을 연단하는자,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거룩함의 기준을 갖고 오실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당신의 백성을 깨끗하게 하신다”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기준을 갖고 오실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들을 거룩하게 바꾸어 주실 것을 예고합니다.

이것은 구약을 통해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칭의의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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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말라기 선지자는 우리와 함께하실 하나님과 살아가는 방법을 선포합니다.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의로움으로 표현된 [체다카]는 하나님의 기준, 즉 공의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공의로운 제물은 예수님을 통해 변화된 성도의 예배하는 삶이 됩니다.

불의한 것에 대항하며
억울한 사람의 편이 되는 것과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모습에 대항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모든 것들 앞에 담대히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 사랑받은 백성의 삶,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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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을 통해서 교회가 된 “나”에게 임재하신 하나님, 그리고 2천 년 전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기억해봅니다.
주님이 오심은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그 소중한 열쇠를 갖고 공의와 정의를 향해 담대히 살아가야겠습니다.

때가 되면 비로소 말라기 선지자가 선포했던 말씀과 같이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던 모습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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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 3: 1 - 6 ]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2018.12.10 (잠깐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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